프로와 아마추어 벽을 허문 프레스트윅

1860년대 프레스트윅에서 만든 스포츠 대회가 ‘제네럴 골프 토너먼트 포 스코틀랜드’ 이다.

그들의 코스와 소속 프로인 톰 모리스를 자랑하기 위해 만든 대회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첫 대회에서 머셀버러 클럽에서 온 윌리 파크가 우승을 하고 모리스는 2위에 그쳤다.

첫 대회때는 프로들과 아마추어들의 대회가 따로 열렸다.  그런데 첫해 경기를 본 아마추어인 귀족들은 프로의  실력이 대단치 않다고 느꼈다. 한 번 겨뤄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듬해 당시로선 높디 높으며 넘어서도 안 된다고 여겨졌던 아마추어와 프로의 벽을 헐고 아무나 참가해서 실력을 겨루자며 대회의 문호를 열었다.

그것이 디 오픈 챔피언십이  ‘열린 Open ‘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계기다. 정확히 말하며 디 오픈 챔피언십은 1861년에 시작되었다.

프레스트윅 코스는 디 오픈 챔피언십이라는 말이 나오기 10년전인 1851년에 만들었다.  그 역사는 술집에서 시작 되었다.

1850년 프레스트윅의 몇몇 유지들이 붉은 사자 여관에 딸린 술집에서 거나하게 한잔 마셨다.  요즘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술자리에서 골프 얘기가 빠지지 않는 것처럼 그때 그 사람들도 골프 얘기로 꽃을 피웠다.

그러다 “우리 동네에도 골프 코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술김에 한 얘기였지만 그들은 실행에 옮겼다.

마침 뛰어난 프로인 톰 모리스가 쉬고 있던 터라 운도 좋았다.  그들은 톰 모리스를 그린 키퍼로 스카우트해서 골프 코스를 만들었다.  프레스트윅 사람들은 매우 만족 스러워했다.  자신들의 코스가 매우 좋고 톰 모리스의 골프 실력도 최고라고 생각했다.

세인트 앤드루스나 머셀버러 같은 명문 골프 코스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느꼈고 그것을 자랑하고 싶었다.

붉은 사자 여관 술집에서 또 아이디아가 나왔다.  이곳 프레스트윅에서 전국의 프로들을 모아 대회를 여는 것이었다.  요즘도 명문을  지향하는 신설 골프장은 홍보용으로 프로대회를 열곤 한다.

1번 홀은 578야드였다.  요즘 ‘세계 최장’ 운운하면서 1천야드가 넘는 홀을 만드는 골프장들이 있는데  이 홀이 그 거리경쟁의 효시다.

‘578야드 1풋 foot  2인치’ 라는 정밀한 길이까지 재놓은 것을 보면 당시 프레스트윅 회원들이 이 홀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는지 짐작이 간다.

이 홀은 파가 6정도로 여겨졌다.  모리스의 아들 톰 모리스 주니어는 1870년 디 오픈 챔피언십 1라운드 이 홀에서 3타로 홀아웃, 골프사상 첫 더블이글(알바트로스)을 기록했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